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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처음 펼쳤던 톨스토이의 소설을 50대가 되어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같은 문장인데 전혀 다른 곳에서 걸렸습니다. 젊을 때는 인물의 선택을 따라갔다면, 지금은 그 선택 뒤에 남겨진 사람의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다 작품을 쓴 사람의 삶이 궁금해졌고, 결국 그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위대함 뒤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방황과 성장 — 도박과 군입대, 그 사이에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쓴 사람이 젊은 시절 도박으로 자신이 태어난 저택의 본채를 날려버렸다는 사실을요. 레프 톨스토이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청년 톨스토이의 일기를 보면 자기 혐오와 자기 개선의 다짐이 번갈아 나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쓰고, 다음 날 카드판에 앉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도 돌아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성적 판단보다 본능에 더 많이 삶을 맡겼던 짧은 시기가요. 그때마다 스스로를 상황의 피해자로 설명하면서 죄책감과 합리화 사이를 오갔습니다. 지금 그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 탓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1851년, 자괴감이 극에 달했던 톨스토이는 형을 따라 군에 입대해 크림 전쟁에 참전합니다. 전장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추상적 명분이 아니라 그냥 죽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세바스토폴 이야기』로 이어졌고, 현장 르포르타주(reportage) — 즉 사건 현장을 직접 취재해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방식 — 에 가까운 이 작품으로 그는 단번에 러시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목격한 단두대 공개 처형은 그에게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이 과연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사상 안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지금 크림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머릿속에 걸립니다. 두 아들이 현재 군복무 중인 저로서는, 전쟁을 설명하는 어떤 명분도 한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또렷해집니다. 톨스토이가 전쟁터를 나오면서 품었을 감정이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 부모 조기 사망으로 인한 극심한 외로움과 죽음 공포가 방황의 심리적 배경
- 도박과 방탕, 자기 개선 다짐의 반복 — 자기 혐오와 죄책감의 공존
- 크림 전쟁 참전 후 『세바스토폴 이야기』로 문단 데뷔, 전쟁의 참혹함을 르포 형식으로 기록
- 파리 공개 처형 목격 → 국가 권력과 제도적 폭력에 대한 근본적 회의 시작
소피아 — 위대한 작품 뒤에 있던 사람
1862년, 서른네 살의 톨스토이는 열여덟 살의 소피아 베르스와 결혼했습니다. 결혼 전날 밤 그는 소피아에게 자신의 일기를 읽게 했습니다. 여러 여성과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기록된 일기였습니다. 솔직함이었는지, 고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읽어야 했던 사람의 충격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 남편의 연애사를 들은 뒤 예상치 못했던 질투와 불안이 방어기제처럼 장착되었습니다. 소피아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직접적인 충격이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을 안은 채 결혼 생활을 시작한 것이죠.
소피아는 결혼 후 열세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중 다섯을 어린 나이에 떠나보냈습니다. 영지의 살림과 재정 관리를 도맡았고, 밤마다 톨스토이의 원고를 손으로 옮겨 적는 필사(筆寫) — 여기서 필사란 작가의 육필 원고를 정서하고 교정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당시의 출판 준비 작업입니다 — 를 반복했습니다. 『전쟁과 평화』 원고는 총 일곱 번 전사되었다고 전해집니다(출처: 톨스토이 국립박물관).
저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가사와 직장을 병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아이들을 어머니께 맡기고 직장에만 집중했을 때가 훨씬 편했지만, 그 선택에는 늘 죄책감이 따라왔습니다. 소피아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그것도 열세 명을 상대로 해냈습니다. 가히 존경스럽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말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모든 저작권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비밀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그 대작들이 소피아의 희생과 피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 결정에 대한 진지한 상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저는 소피아의 분노를 재산욕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악처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지워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톨스토이주의 — 사상의 완성과 비극적 결말
톨스토이의 말년 사상은 흔히 톨스토이주의(Tolstoyism)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톨스토이주의란 무저항 비폭력, 소유의 포기, 직접 노동, 제도화된 종교 비판을 핵심으로 하는 그의 독자적인 윤리·종교 철학입니다. 백작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직접 구두를 만들고, 농민처럼 밭을 일구며 살겠다고 선언했으니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무저항주의(Nonresistance) — 악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사랑과 설득으로 대응한다는 원칙 — 는 훗날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서 킹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사상 자체만 보면 시대를 훨씬 앞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상의 실천 방식에서 계속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금욕을 설파하면서 밤이 되면 아내에게 육체적 욕망을 요구하는 모순, 세상을 향해 가르침을 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과는 상의 없이 결정을 내리는 방식. 가족을 대하는 일에서만큼은 이상과 실천 사이의 거리가 너무 컸습니다.
1910년 10월, 여든두 살의 톨스토이는 새벽에 집을 떠났습니다. 아내의 감시와 사상의 괴리로 더 이상 그 집에서 숨을 쉴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여정은 길지 않았습니다. 아스타포보역 역장의 방에서 폐렴으로 쓰러졌고, 그곳에서 열흘 뒤 눈을 감았습니다. 소피아가 도착했지만 그는 끝내 면회를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녀가 방에 들어갔을 때 남편은 이미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오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저는 가치관 차이로 부부의 인연을 일찍 끝낸 사람입니다. 그 선택이 제게 맞았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을 함께 버텨온 부부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차가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장면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톨스토이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A.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으로 5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방대한 서사시입니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삶이 가지는 의미를 탐구한 작품으로, 소피아가 원고를 일곱 번 필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볍게 읽기에는 분량이 상당하지만, 50대에 다시 펼치면 젊을 때와 전혀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Q. 톨스토이주의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뭔가요?
A. 톨스토이주의의 핵심인 무저항 비폭력 사상은 마하트마 간디가 직접 편지를 주고받으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고,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 작가의 말년 사상이 20세기 두 개의 역사적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톨스토이 문학을 넘어선 그의 사상적 파급력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Q. 소피아는 왜 저작권에 그토록 집착했나요?
A. 단순한 재산욕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소피아는 열세 명의 자녀를 키우고, 영지를 운영하고, 원고를 수십 년간 직접 필사한 사람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그녀의 노동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정은 그녀 입장에서는 자신의 평생 노동이 지워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Q. 톨스토이는 왜 82세에 가출을 감행했나요?
A. 자신의 사상과 실제 생활 사이의 괴리, 그리고 아내의 지속적인 감시와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비밀 유언장을 눈치챈 소피아가 일기장과 서류를 뒤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톨스토이는 그 집이 더 이상 자신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고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창한 도피라기보다, 삶의 마지막에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다 죽고 싶었던 몸부림에 가까웠습니다.
Q. 50대에 고전을 다시 읽는 게 실제로 다른가요?
A. 제 경험상 확실히 다릅니다. 20대에는 주인공의 선택과 사건을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면, 50대에는 그 선택 뒤에 남겨진 사람, 기록되지 않은 노동, 끝내 전해지지 못한 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문장인데 전혀 다른 곳에서 걸리는 경험은, 그 사이 제 삶에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장면들이 쌓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론
50대에 다시 만난 톨스토이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자신의 모순을 끝내 다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소피아 역시 악처나 헌신적인 아내라는 한 단어로 담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어느 한쪽을 쉽게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고전을 다시 읽는 일의 가치는 정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조금 더 늦추는 연습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쟁과 평화』든 『안나 카레니나』든, 지금 책장 어딘가에 있다면 한 번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젊을 때와 다른 문장이 반드시 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