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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림태주 작가의 『그토록 붉은 사랑』을 읽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책 속 어머니의 편지가 제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그 문장들을 따라가며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떠올렸습니다. 이 글은 그 기억을 붙잡아두려는 시도입니다.

어머니의 편지, 읽히지 못한 마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에세이를 읽다 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림태주의 『그토록 붉은 사랑』에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긴 유서 형식의 편지가 등장합니다.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대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배우지 못했어도 그 마음만큼은 어떤 문장보다 깊었으니까요.
편지 속 어머니는 자신의 삶 전체를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저는 이 '족하다'는 말이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체념과 수용이 한데 섞인 달관(達觀)의 언어입니다. 달관이란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태도를 가리키는데, 저는 이 단어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어머니도 그랬습니다. 여든셋의 나이에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자식이 힘들까 봐 스스로 기저귀를 갈고 혼자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을 조용히 해내셨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제가 더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나는 괜찮다"는 눈빛 하나로 모든 걸 삼키시던 분이었습니다.
림태주 작가는 이 편지를 통해 모성적 자기 소멸(maternal self-erasure)이라는 심리적 패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합니다. 모성적 자기 소멸이란 어머니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지우고 오롯이 자녀를 위한 존재로만 살아가는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희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그 시대 어머니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직접 그 삶을 옆에서 봐왔기 때문에, 이 개념이 단순한 이론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달관(達觀): 세속적 집착을 벗어나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태도
- 모성적 자기 소멸(maternal self-erasure): 자신의 감정을 지우고 자녀만을 위해 살아가는 심리적 패턴
- 유서 형식의 편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다 하지 못한 말을 글로 남기는 행위
그리움, 나누지 못한 대화가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리움이란 감정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저는 그리움이 뭔지 몰랐습니다. 그리움은 늘 '없어진 것'을 향한다는 걸, 막상 잃고 나서야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림태주 작가는 그리움을 "사무치는 기다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이 정확합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감정, 그게 그리움이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복잡 비애(Complicated Grief)라고 부릅니다. 복잡 비애란 일반적인 애도 과정을 넘어서 상실감이 일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출처: Columbia University Complicated Grief에 따르면, 사별 후 6개월이 지나도 강렬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지속될 경우 전문적인 지지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경우엔 죄책감이 특히 깊습니다. 어머니는 제 자식 셋을 손수 키워주셨습니다. 밤잠을 못 주무시면서 손자들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해 주셨는데, 저는 그 긴 시간 동안 어머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는지, 무엇이 힘드셨는지,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묻지 못한 날들이 지금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림태주 작가는 이렇게 씁니다. "내가 준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남의 마음 때문에 아파하고 서운해 할 일이 아닌 거지." 읽으면서 한참 멈췄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곁에 있으면서도 제 일과 휴대전화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림태주가 건네는 위로, 그리고 독서치료
제가 이 에세이를 직접 읽으면서 느낀 건, 위로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흔한 위로책처럼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그리지 말고 살아라"라고, 마치 어머니가 옆에서 다독이듯 씁니다. 그 문장이 저한테는 가장 깊이 박혔습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남았습니다.
림태주 작가의 글에는 정서적 울림(emotional resonance)이 있습니다. 정서적 울림이란 글이 독자의 내면에 있는 경험과 공명하면서 단순한 공감을 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의미합니다. 작가는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와 『오늘 사랑한 것』에서 깨꽃이 눈부신 밭, 장날에 화장하고 나서는 어머니, 꽃 색깔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자(母子)의 대화를 씁니다. 이런 장면들이 쌓여 삶이 된다는 것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보여줍니다.
출처: 한국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문학 작품을 통한 독서 치료(bibliotherapy)가 애도 과정에 있는 성인의 감정 처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독서 치료란 책 읽기를 통해 감정을 정화하고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치료적 접근법입니다. 저는 이 에세이가 그런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생전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 속에서 대신 찾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어머니는 편지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었다." 그 문장을 읽고 한참 책을 덮었습니다. 살아 계실 때 왜 이 말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요. 저도 지금 이 글을 쓰며,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말을 뒤늦게 남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림태주 『그토록 붉은 사랑』은 어떤 책인가요?
A.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긴 유서 형식의 편지를 중심으로, 모성과 그리움, 사랑의 언어를 조용하고 단단하게 풀어냅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감정적으로 소진된 날에 손이 자꾸 가는 책이었습니다.
Q. 부모님을 잃은 후 그리움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이상한 건가요?
A. 이상한 게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사별 후 6개월이 지나도 강렬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지속되는 상태를 복잡 비애(Complicated Grief)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애도 과정을 넘어 일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데, 이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실질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Q. 독서 치료가 실제로 애도에 도움이 되나요?
A.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문학 작품을 통한 독서 치료(bibliotherapy)가 애도 과정의 감정 처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제 경우에도 림태주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어머니께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 속에서 대신 찾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책 한 문장이 상담 한 시간보다 더 깊이 닿기도 했습니다.
Q. 살아 계실 때 대화를 못 나눈 죄책감은 어떻게 다루나요?
A. 저도 아직 다루는 중입니다. 다만 함께한 시간 전체를 '부족했던 순간'으로만 기억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그 순간들,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던 시간들도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죄책감을 완전히 지우려는 것보다,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는 게 현실적인 방향인 것 같습니다.
결론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살아 계실 때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말을 뒤늦게 남겨봅니다.
림태주의 에세이가 저한테 가르쳐준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장면들, 티격태격하는 모자의 대화, 장날에 화장하고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 같은 것들이 쌓여 삶이 된다는 것을요. 그 문장들이 잊고 있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데려왔습니다. 그리움이 사무치는 분들께,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래 남는 위로가 거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