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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어느 순간 그의 매력에 빠져들다 (현재를 살고, 춤 추고, 광기라는 태도)

dailyfind1 2026. 10. 12. 23:56

목차


    처음에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 조르바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를 관찰하기보다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갖지 못했지만 늘 부러워했던 삶의 태도를 그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0대의 화자와 60대의 조르바.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조르바에게는 ‘노인’이나 ‘늙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거침없이 웃고 이야기하며, 눈앞의 순간에 온 마음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는 나이보다 생기가 먼저 보였습니다.

    저는 50대가 된 지금도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어렵습니다.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고, 인사할 기미가 보이면 그제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허물없이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을 보면 늘 부럽고 신기했습니다.

    저런 대담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조르바를 읽는 동안에도 자꾸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런 그의 매력에 어느 순간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책입니다.

     

    지중해 섬의 푸른 바다와 작은 배들이 있는 풍경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날, 해변에서 조르바에게 춤을 배우며 삶의 리듬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현재를 산다는 것 — 조르바가 처음 보여준 것

    책을 펼치면 화자는 전형적인 지식인입니다. 크레타섬에서 광산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책 속에 있습니다. 분석하고, 계획하고, 따져봅니다. 그러다 조르바를 일꾼으로 고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가 이 초반부를 읽으면서 느낀 건, 화자가 저랑 너무 닮았다는 거였습니다. 50대인 지금도, 낯선 사람 앞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주뼛주뼛 서성이는 그 모습. 화자가 책을 안고 있는 장면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반면 조르바는 달랐습니다. 그는 현존(present-moment awareness) —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 — 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현존이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계획에 정신이 팔리지 않고 지금 눈앞의 사람과 감정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르바는 대화 중에 산투르(그리스 전통 현악기)를 꺼내 연주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웃어줍니다. 계산된 공감이 아니라, 그냥 거기에 있는 감정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죠.

    오르탕스 여인이 조르바에게 끌렸던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구라도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사람, 들어줄 때 정말로 듣는 사람. 그런 태도는 평생 연습해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제가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조르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 조르바는 대화 상대에게 산투르 연주를 보여줄 만큼,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 화자(지식인)가 책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면, 조르바는 몸으로 직접 부딪혔습니다
    • 현존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이 실제로 느끼는 삶의 온도입니다
    요약: 조르바의 현존하는 태도는 머리로 계획하는 삶이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춤의 의미 — 슬픔을 견디는 몸의 언어

    책을 읽다가 잠깐 멈췄던 장면이 있습니다. 조르바가 어린 아들을 잃었을 때 춤을 추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슬픔을 춤으로? 그게 도피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조르바의 설명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그게 도피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슬픔이 가슴을 터뜨릴 것 같을 때,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분석하는 대신 몸으로 밖으로 밀어냅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신체화(somatization)의 반대 개념에 가깝습니다. 신체화란 감정적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안으로 쌓이는 것을 말하는데, 조르바의 춤은 정반대로 감정을 몸을 통해 바깥으로 표출하는 방식입니다(출처: WHO 정신건강 자료).

    저도 살면서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항변해 본 적이 있습니다. 왜 나만 이런가, 불공평하다, 하고요. 그런데 그 항변이 실제로 무언가를 바꿔준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성으로 따지고 분석해봐도 세상은 그냥 불합리한 채로 있더라고요. 조르바의 춤은 그걸 알면서도 삶에 다시 손을 내미는 행위였습니다.

    광산 사업이 완전히 무너진 대실패의 순간, 조르바는 화자에게 춤을 가르칩니다. "가르친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그건 스텝을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무너진 사람에게 지금 여기서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다시 살아내는 거라는 걸 보여주는 거였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게 어쩌면 가장 강한 위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 조르바의 춤은 슬픔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고통을 밖으로 흘려보내고 다시 삶 앞에 서는 방식입니다.

     

    광기라는 태도 — 일에 대한 조르바의 진짜 얼굴

    솔직히 저는 조르바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 그냥 자유분방하게 즐기며 사는 사람 정도로만 봤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오르탕스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 그런데 광산 현장에서의 조르바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집중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성실함이 아닌 광기(mania)에 가까운 열정이었습니다. 여기서 광기란 병리적 의미가 아니라, 이성적 계산을 넘어서 온 존재를 하나의 목표에 쏟아붓는 상태를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파이드로스』에서 신적인 광기(divine madness)를 창조와 사랑의 원천으로 봤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그 부분을 읽고 나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생각이 났습니다. 수업을 준비할 때 저도 나름 성실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과연 그게 온 열정을 다 쏟아붓는 것이었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조르바의 그 광기가 제게도 조금이나마 불을 지펴준 것 같습니다.

    조르바를 통해 화자가 배운 것, 그리고 제가 배운 것은 사실 비슷합니다.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한 발 내려오는 것. 실존주의(existentialism) — 삶의 의미는 관념이 아닌 실제 살아내는 행위에서 나온다는 철학적 입장 — 에서 말하는 것처럼, 결국 삶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겪어내는 것이라는 걸 조르바는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요약: 조르바의 광기는 무질서가 아니라, 이성을 넘어 온 존재를 던지는 삶의 태도이며 일과 사랑 모두에 적용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리스인 조르바 책은 어렵지 않나요?

    A. 제가 직접 읽어보니 생각보다 술술 읽힙니다.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만, 조르바라는 인물이 워낙 생생하고 유머가 넘쳐서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느 순간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섬에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이 생깁니다.

     

    Q. 조르바가 춤을 추는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한 흥겨움이 아닙니다. 조르바에게 춤은 슬픔이나 실패처럼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을 몸 밖으로 표출하는 수단입니다. 아이를 잃었을 때도,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도 그는 춤을 통해 다시 삶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고통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통과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Q. 화자와 조르바, 둘 중 누구에게 더 공감이 가나요?

    A. 제 경우엔 처음엔 화자였습니다. 책과 사색으로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낯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읽어가면서 조르바가 점점 부러워졌습니다. 공감은 화자, 동경은 조르바 — 이 두 감정이 동시에 생기는 책이었습니다.

     

    Q. 이 책이 실제 삶에 도움이 되나요?

    A. 제 경우에는 수업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잘 준비하는 것을 넘어, 조금 더 열정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당장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겠지만, 읽고 나서 지금 이 순간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는 책입니다.

     

    결론

    『그리스인 조르바』를 덮고 그의 삶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조르바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사랑했다가 잃습니다. 그런데도 삶에서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 태도 하나가 이 책이 오래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읽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낯선 자리에서 주뼛주뼛 서성일 것 같습니다. 조르바처럼 될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온몸으로 살아내 보려는 마음 정도는 그에게서 빌려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크레타섬의 바다를 상상하며 첫 페이지를 열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D1A4sIWJI8&t=157s